렌스터 낙성-출격전야


유그드랄력 761년.

렌스터의 왕자 큐안은, 아내 에슬린의 오빠이자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시알피의 시글드가 반란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을 보다 못해, 렌스터군의 정예 · 랜스리터를 이끌고, 그곳에 참전하기 위해서 이드 사막을 건너고 있었다.

북트라키아, 먼스터 지방으로부터 잦은 굴욕적 침공에 반격의 시기를 보고 있던 트라키아 왕은, 그것을 알고 배후에서 습격해서 그들을 괴멸시켰다. 트라반트는, 에슬린과 함께 동행했던 그들의 딸 알테나와 큐안이 가지고 있던 지창 게이볼그를, 전리품으로 고국으로 가져갔다.

먼스터 지방의 네 국가인 렌스터, 얼스터, 먼스터, 코노트는 군사동맹에 가까운 결속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세 국가가 반대하는 와중, 렌스터 왕은 왕자를 막지 못했고, 그 결과로 큰 손실을 입게 되어, 먼스터 지방의 맹주적 존재라는 영광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렌스터의 랜스리터를 격파한 기세와, 아직도 대륙 쪽의 그란벨이 소란스러운 것을 호기로 잡은 트라반트 왕은, 예전부터 골칫거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먼스터 침공을 개시했다.

이전부터 트라키아에 호전적이었던 먼스터도 농성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성과 마을을 잇는 성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있었다.

트라반트 쪽에서 보자면, 하늘에서 침입할 수 있는 용기사를 상대로 농성전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궁병이나 마도사에게 노려져 어설프게 손해를 보는 건 별로다. 앞으로 코노트, 렌스터와 전쟁은 계속될 테고, 최종적으로는 트라키아 통일이 목적이기 때문이었다.

"폐하, 먼스터가 트라키아에게 포위당했다는 소식입니다. 그 전후로, 먼스터로부터 원군 요청도 도착했습니다."

큐안 왕자의 사망 소식 이후, 비탄에 잠겼던 성이 갑작스레 어수선해졌다.

큐안의 복수를 바라는 젊은 병사들을 진정시키고 외교로 트라키아를 추궁하려던 참에, 선수를 빼앗겨 트라키아의 침공이 시작됐다.

"그래서, 규모는?"

"아마 전군이 아닐까, 라고 생각됩니다. 드래곤은 확인된 것만으로 서른 기. 중기사가 10사단이고, 보병이..."

"먼스터는 어째서 반격하지 않는가?"

"최초의 전투에서, 용기사와 궁병의 맹공격을 받아, 주요 장군들이 전사하였다 합니다. 성에 남아 있던 것이 마법부대와 궁병이 주를 이루고 있어 용기사들이 접근하지 못했고, 그 때 보병부대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오옷.

모여 있던 장군들 사이에서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거창한 침공은, 일찍이 없었다.

"용기사가 30이라는 것은... 트라반트 놈, 용병으로 나가있던 녀석들을 다 불러들인 건가."

"어떻습니까, 폐하?"

"맹약을 맺고 있는 이상, 출격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리고, 큐안의 복수전이 되기도 한다."

칼프 왕의 그 말에, 그곳에 모여 있던 젊은 장군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반드시 트라반트 놈의 숨통을 끊어 주겠어!"
"트라키아 촌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겠어!"

"트라반트를 만만하게 보지 마라!"

젊은 기사들의 교육을 맡은 창기사 란츠 장군이, 들뜬 기분에 휩싸인 그들에게 일갈했다.

"폐하, 설령 농성전에 들어가 있다 하더라도, 그 트라반트가 침략의 손을 늦추지는 않을 겁니다. 여기서 전군으로 단숨에 공격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를 멈출 기회도 없고 방법도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루빈이, 그렇게 진언했다.

"그렇다. 지금 코노트, 얼스터에 협력한다면, 트라키아 따위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각이 무너지게 된다면, 이야기는 반대로, 우리 쪽이 위험해져 버릴 것이다.."

"폐하.."

칼프 왕이 내뱉은 무거운 말에, 웅성거리던 방이 조용해진다. 모두의 마음 속에 '큐안 님이 계셨더라면...' 라는 생각이 떠다녔다.

"그러나,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지원군의 요청이 있었던 이상, 우리 렌스터는 거기에 부응할 의무가 있다. 전군을 소집, 부대를 편성하고, 코노트로 향한다. 코노트에서 코노트군과 합류한 뒤, 먼스터에서 트라키아군을 친다."
칼프 왕의 이 결정에, 렌스터군의 사기가 오른다.


옥좌를 떠난 칼프 왕은, 방으로 향하지 않고 리프에게로 갔다. 그곳에는 왕비와 리프의 유모, 큐안에게 호위역을 분부받은 핀이 있었다.

"드디어군요."

"그래, 트라반트 놈, 제대로 때를 놓치지 않고 왔어."

쓴웃음을 머금은 왕의 옆모습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리프의 성장도 보고 싶었는데, 이 난세에 그것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

"폐하, 저도 같이..."

"아니 된다. 큐안은 너에게 리프를 부탁했다. 렌스터 왕가가 존속해 나가려면 리프의 무사가 불가결하다. 그걸 너에게 맡긴다, 핀."

칼프 왕의 강한 어조를 들은 핀은, 눈을 아래로 향했다.

"그런 큰 역할, 제가 감당해 낼 수 있을지..."

"괜찮습니다, 분명 성기사 노바의 가호가 있을 거예요."

왕비의 다정한 말도, 내려진 역할에 대한 막중한 책임 앞에선 힘을 잃었다.

"믿는 것, 지켜야 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눈앞의 고난에도 강한 법이죠."

유모의 팔 안에서 잠들어 있던 리프가, 불편한 듯 보채기 시작한다.

"봐요, 리프까지 불안해하고 있잖아요. 핀, 당신의 불안을 리프는 알 수 있어요. 그야, 당신이 리프 곁에 제일 오래 있었던 걸요."

"왕비님..."

"그러니까, 약속해 주세요. 리프를 지켜주겠다고..."

"맹세하겠습니다. 반드시, 리프 님을 지켜드리겠습니다."

깨어날 거라 생각했던 리프는, 다시 새근새근 잠들기 시작했다.

"이 어린 아이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사태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핀, 당신은 리프만이라도... 큐안과 에슬린을 위해서, 이 아이만은 지켜 주세요..."

마치 죽음을 각오한 듯한 국왕 내외의 말에, 핀과 유모는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잃었다.

"내일은 코노트로 간다. 성에는 그다지 병사를 남길 수 없겠지만..."

"저는 괜찮아요.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핀, 당신 쪽에 계신 그 분도 이쪽으로 불러와 주시겠어요?"

"라케시스 님..., 말입니까?"

왕비에게 뜻밖의 말을 듣고, 그는 한순간 바보 같은 대답을 하고 말았다.

"네. 큐안의 친구, 노디온의 엘트샨 님의 여동생 라케시스 님 말이에요. 그 분도 아이를 데리고 계신다고 들었기에.... 그 아이가 리프와 친구로 지낸다면 리프도 쓸쓸하진 않겠죠. 그리고 그 분도 전화를 피해서 여기까지 오셨다고..."

"...네."

"정말 믿음직스럽군."

"아이가 있는 어머니는 평범한 여자보다 강해지는 법... 살아가고자 하는 힘이 혼자일 때보다 강해지니까요..."

왕비의 미소가 흐려졌다. 칼프 왕이 왕비의 손을 잡고 어깨를 감쌌다.

"핀, 오늘은 이만 됐다. 돌아가도록."

칼프 왕은, 입을 다문 왕비를 바라보며, 핀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일..."

핀은 잠든 리프를 바라본 후, 방을 나섰다.

왕은,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며 손을 쓰려 하고 있었다. 그것이 핀은 믿기지 않았다. 지는 것까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기양양한 기사들에게 대한 배신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건 그만큼 트라키아가 강적이라는 것이겠지. 그는 렌스터 왕가의 존속과, 노바의 혈통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의무감을 뼈저리게 느꼈다.

"제겐 너무 무겁습니다. 폐하, 큐안 님...."

아무도 없는 회랑에서, 핀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때는, 자신도 큐안을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남겨졌다. 같이 남기로 했던 알테나는 에슬린에게서 떼어놓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울부짖었고, 핀은 리프를 남겨두는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큐안 왕자의 원수를 갚는다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자신은 이곳에 남아서, 왕명으로서 리프를 지켜야만 한다. 그것이 힘들었다.

"어째서 저인가요, 큐안 님?"

"출진 전인데, 왜 그런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어, 핀?"

회랑의 그림자에서, 친우인 글레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사 훈련을 시작하면서 친해지게 된 그는, 노력가로 매일 정해진 시간에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핀은, 젊었을 적부터 눈치가 빠르고 빈틈을 잘 찾아내는 편이라 가르치는 기사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았다면, 글레이드는 그 열성을 인정받는 경우가 많았다.
동년배의 기사들에게 핀은 따돌림을 당하기도 해서, 글레이드가 감싸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것도, 핀이 큐안의 동행으로서 시알피로 가게 되고, 그 이후부터는 핀은 그들에게도 인정받게 되었다. 친구도 늘었지만, 친우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글레이드뿐이었다.

"슬슬 내일인데, 핀 너도 가는 거냐?"

".....아니, 폐하께서 성에 머무르라고 하셔서."

"리프 님 때문인가? 그분은 너를 잘 따르니까 말야."

회랑에서 안뜰로 나가자, 내일의 준비를 시작하고 있던 다른 병사들이, 나란히 걷는 두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글레이드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고, 핀도 눈으로 인사를 보냈다.

"너도 출진하는 거야, 글레이드?"

"아니, 드리아스 장군이 성 수비를 맡아서 나도 여기 남게 됐어."

"든든한걸. 드리아스 장군은 충의가 두터우신 분이고, 너까지 있으니 이 성은 함락되지 않을 거야."

"야야야, 그렇게 말하면, 폐하가 질 것 같잖아. 여기까지 트라키아가 오겠어?"

폐하의 말씀이 너무나 비관적이여서, 핀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의기양양해진 친구에게 놀림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어두운 생각에서 벗어났다.

"미안. 큐안 님이 리프 님을 지켜달라고 말씀하셨었는데, 오늘도 폐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셔서 말야, 아마도 폐하에게서 큐안 님의 모습을 봤나 봐."

"부모와 자식이니까 어쩔 수 없지. 아니면, 폐하가 큐안 님처럼 돌아가실 거라는 뜻이야? 그건, 모욕이지!"

갑자기 험악한 얼굴이 된 글레이드가 따지고 들자, 핀은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뭐가 웃긴데?"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한 핀의 발걸음이 멈췄다.

"어이 핀"

"...미안...나 혼자만..남겨두고 가는...것 같아서.."

웃음을 참으면서, 화를 내고 있는 친구에게 설명했다.

"뭔데 그건..."

웃음을 멈추지 않는 핀이, 글레이드는 어이가 없었다. 뭐가 또 이상했는지, 핀의 웃음 발작이 더 심해져서, 애써 참았던 등까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웃음이 잦아든 핀은, 어이없다는 듯이 자신을 보는 글레이드에게 사과했다.

"미안했어. 중요한 전투가 있을 때마다, 언제나 나 자신만 빠지는 것 같아서 부루퉁해졌던 것 같아. 나에게는 리프 님을 지킨다는 중대한 사명이 있는데도.. 아니, 너무 중대해서 도망치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무슨 한심스러운 말을. 영광이잖아 그건. 그만큼 신뢰받고 있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우스웠다는 거야, 내가. 목숨을 걸어도 상관없을 그 사명을 중압이라고밖에 생각하지 않고, 불행이라 느꼈던 내 자신이 우스웠다고."

너무 웃어서 눈가에 눈물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 표정은 쾌활했다.

"이상한 새끼..."

어이없어하면서도 그 웃는 얼굴에 이끌려, 글레이드도 웃음이 새어나왔다. 큐안이 죽고 나서 이 친구의 깊게 생각하는 얼굴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보는 웃는 얼굴이, 오히려 신선했다.

"자, 이제 돌아가야지... 글레이드도 빨리 가."

"아... 무기고에 들러서, 보병 무기를 확인하고 있다고 하니깐, 그게 끝나고 갈게."

성의 출구 근처까지 온 두 사람은, 각자의 방향으로 갈라졌다.